영국 전열함 바다의 제왕(HMS Sovereign of the Seas)에 대한 잡설 선박취미

갖고 있는 책 겉표지 그림인데 저 배가 소버린호를 그린 거랍니다. 영어론 HMS Sovereign of the Seas고 바다의 제왕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만 함명도 꽤 여러번 바뀐 역사가 있고 부르기 귀찮으니까 그냥 소버린호라고 하지요. 한 때 소버린이라 한 적도 있고 마지막 함명도 로열 소버린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 배가 진수된게 1637년이니까 스웨덴의 바사호와 같은 세대에 속합니다. 하지만 바사를 전열함이라 하는 건 못봤는데 소버린호는 곳곳에 전열함이라고 언급한 걸 봅니다. 물론 배의 제원을 보면 전열함이라 해도 문제가 없고 무척 시대를 앞서갔다는 평판도 있지요. 전공도 상당한 모양이고 말입니다.

소버린호는 영국해군이 필요하다고 해서 건조한 배가 아닙니다. 국왕(=국가)의 위신을 세우기 위한 거였지요. 배경은 대충 이렇다고 합니다. 당시 영국과 새롭게 부상한 바다의 강자 네덜란드는 사이가 안좋았는데. 네덜란드쪽 이념이 "자유로운 바다"였다고 합니다. 바다를 통해 무역하는건 내맘이지 네들이 간섭할게 아니다란 뜻이었는데 이에 대해 영국은 반대로 "닫힌 바다"라는 표어를 걸었습니다. 바다는 우리꺼라는 거지요. 당시 영국왕 찰스1세는 이런 이념에 걸맞는 배를 만들고자 합니다. 영국왕은 바다의 지배자를 자처하기도 했고 경쟁국 네덜란드에게 본때를 보여줄만한 배를 만들어서 자기 이름을 높이고자 했지요. 후대의 영국왕은 생각하기 어려운 전제군주같은 모습입니다만.

계획한 스펙은 당시로선 어마무지한 거였던게 확실합니다. 건조 전에 영국 도선사 조직(Trinity House)에서 이렇게 딴지를 걸었습니다. 영국엔 이런 배가 정박할 항구가 없으며 바다에 세워둘 수 밖에 없는데 그러다가 폭풍에 배가 침몰하면 애써만든 좋은 배는 물론이고 500여명의 승조원과 귀족인 사관까지 잃을거라고요. 하지만 찰스1세는 반대를 물리치고 건조를 승인했고 결국 소버린호가 태어난거죠.

국가의 위신을 걸고 만든 배라 그런지 혹자는 소버린호가 100년은 앞서간 전열함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진정 이 배의 놀라운 점은 가격이 아닐까 싶어요. 소버린호 건조하는데 6만5천 586파운드가 들어갔다는데 요즘 화폐로 어느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라 기둥뿌리를 뽑을 정도였던 듯 합니다. 특별 건함세를 모든 국민한테 걷었을 정도라고 하니까요. 더 깨는 건 소버린호는 바사호처럼 온갖 조각을 붙이는데 그치지 않고 거기에 금박을 입혔습니다. 금도금에 들은 돈만 6,600여 파운드인데 당시에 준수한 전함 뽑을 수 있는 액수라고 합니다.

소버린호와 건조를 지휘한 조선공 피터 팻 입니다. 뭐, 곳곳에 금칠한게 보이지요. 남자의 로망으로썬 최고였지만 역시 돈을 너무 많이 썼기에 재정위기에 단단히 한 몫합니다. 그리고 찰스1세는 대규모 반란으로 왕위를 잃고 목까지 잘리지요. 올리버 크롬웰의 공화국 시대에는 잠깐동안 함명을 Commonwealth라고 바꾸기도 했습니다. 군주라는 이름이 사형당한 왕을 생각나게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을까요? 뭐, 소버린호를 가장 좋아한 군주는 분명 찰스1세였겠습니다만.

정치적 이유로 함명이 여러번 바뀌는 세월을 보냈지만 이만큼 엄청난 배는 달리 없다는 건 분명했습니다. 당시 치열했던 네덜란드와의 해전에 여러번 불려나갔지요. 네덜란드는 소버린호를 무척 신경썼던 것 같습니다. "황금의 악마"라는 별명도 붙였고 소버린이란 함명이 붙은 배를 침몰시킨다면 보통 적함을 가라앉혔을 때 주는 포상금에 3천 길더를 더해주겠다고도 했다는군요. 하지만 결국 실패했고 소버린호는 목조함으로썬 긴 생애를 살았습니다. 화재로 소실된 해가 1697년으로 오라녜공 출신 윌리엄왕이 다스리던 때였습니다. 사고로 없어진 건 아쉽지만 그 때는 이미 많이 낡아서 바다에 내보내지 않고 항구에 묶어둔 상태였다고 하네요. 어쩌면 결국 해체되고 말았을지도 모릅니다.

처음 겉표지 그림의 책에 실린 소버린호 항목 내용을 보면 영국에선 나폴레옹 시대까지 남아있었다면 넬슨 함대에 배속되어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를 상대로 싸웠을 거란 말까지 돈다고 합니다. 책 저자는 아무리 그래도 배가 여러면에서 진보한만큼 그건 무리라고 적어놨습니다. 하지만 영국인들의 소버린호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는 얘기가 아닐까 합니다.

덧글

  • 슈타인호프 2009/07/11 09:26 #

    아마도 영국산 목재로 건조된 배의 마지막 세대에 속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찰스1세가 무리하게 건함정책을 추진하면서 그럭저럭 생산량이 유지되던 영국 내의 목재자원이 재생산 속도보다 빠르게 고갈되어버렸고, 크롬웰 시대부터는 발트해 산 목재에 크게 의존하게 되었다고 들었거든요. 혹시 맞는지요^^;;
  • 지나가던이 2009/07/13 14:48 #

    님의 댓글을 보고 자료를 좀 찾아보았답니다. 엘리자베스시대부터 영국은 삼림파괴가 심했고 그로인한 사회갈등에 시달렸더군요. 굳이 찰스1세 때 특별히 나무를 고갈시켰던 건 아닌 듯 합니다. 단, 찰스 1세는 나무의 분배를 두고 정치적인 실책을 저질러 귀족과 민중 양쪽으로부터 분노를 샀다고 합니다.

    영국해군이 발트해쪽 목재을 쓴 건 왕정복고 이후인 듯 합니다. 아직 함선을 건조할만한 재목이 다 없어진 건 아니었지만 강을 통한 운송이 일반적이던 때에 내륙 깊숙한 곳에 있는 나무를 벌채해 육상으로 운반하느니 발트해산 목재를 바다로 운반하는게 더 값이 싸게 먹혔기 때문이라는군요.

    어쨌든 님이 말씀하신 대로 소버린호가 마지막 세대에 속한다고 봐도 맞을 듯 합니다.
  • 시쉐도우 2009/07/13 20:56 #

    목재하니까 생각나는 것은 영국장궁을 만드는 '주목 yew' 입니다. (아마 다른 나무와 비슷하게?) 영국 국내산 주목들을 거덜내어버리는 바람에 (남아있는 것은 너무 작은 나무들) 알프스산간지역에 이어서(여기도 쓸만한 크기는 거덜내고), 발트해 연안까지 주목을 찾아 헤매였다고 하더군요.

    함선제조용 목재 고갈문제와 시기적으로 비슷한 것을 봐선, 영국의 삼림파괴가 수종을 별로 안가린 듯도 싶군요. 환경적인 측면에서 흥미로운 사건이 아닐 수 없을 듯 합니다.
  • 지나가던이 2009/07/13 23:27 #

    주목얘기는 저도 한번 들어봤군요. 영국의 삼림파괴는 대단했지만 다른 나라도 비슷했지요. 사실, 나무가 연료와 재료로 널리 쓰였던 시대엔 산업발전이 곧 삼림파괴를 뜻했다고 봐도 됩니다. 발트해 쪽 목재도 쓸만한 건 다 쓰자 아메리카 식민지껄 썼지요. 덕분에 미국독립하고 꽤 타격을 받았던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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